구단명칭 : | 요미우리 자이언츠(読売 ジャイアンツ) | ||||||||||||||||||||||||||||||||||||||||||||||
설립년도 : | 1934년 | ||||||||||||||||||||||||||||||||||||||||||||||
홈구장 : | 도쿄돔(45,600석) | ||||||||||||||||||||||||||||||||||||||||||||||
감독 : | 하라 타츠노리(原 辰徳) | ||||||||||||||||||||||||||||||||||||||||||||||
일본우승 : | 20회 | ||||||||||||||||||||||||||||||||||||||||||||||
리그우승 : | 41회 | ||||||||||||||||||||||||||||||||||||||||||||||
<구단 역사> - 단일리그 초창기 - 1934년 12월 26일 설립당시의 구단명은 대일본동경야구구락부. 에이스 사와무라(沢村 栄治)를 앞세워 일본프로야구가 시작된 1936년에 원년우승을 일궈내었다. 한편 1938년에는 나가노출신의 나카지마 하루야스(中島 治康)선수가 프로야구 창설 후 첫 타격 3관왕을 획득했다. 또한 요미우리는 1939년부터 5년연속 우승을 이루며 황금기를 만들었다. - 제2, 제3 황금기- 1949년 시즌 종료후 요미우리신문사의 라이벌인 마이니치신문사가 마이니치오리온즈라는 팀을 만들어 프로리그에 참가하려고하자 요미우리는 이에 반대하였고, 이를 계기로 리그가 분열되면서 양대리그체제로 돌입한다. 양대리그로 제도가 바뀐 1950년부터 요미우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1960년까지 11년간 무려 8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제2황금기를 맞이하였다. 1958년에는 '미스터 자이언츠' 나가시마 시게오(長嶋 茂雄), 1959년에는 '세계홈런왕' 오우 사다하루(王 貞治,왕정치)가 입단하며 그 유명한 ON포(왕정치,나가시마를 함께 칭함 - 메이저리그 뉴욕양키스의 미키맨틀과 로저매리스의 MM포에서 따옴)를 중심으로 제3황금기를 펼치게 되었다. 1963년에는 나가시마와 왕정치가 타격5부문에서 1,2위를 차지하는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이듬해인 64년에는 왕정치가 일본프로야구기록인 55개의 홈런을 때리면서 대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3위에 머물고 말았다. 1965년부터는 V9이라 불리우는 9년연속 리그우승 및 일본시리즈우승을 일궈내며 일본최강팀으로 발돋움 하였다. 현재까지도 9년연속 일본시리즈 우승은 없으며 거인의 V9에 이은 2위기록이 4팀이 기록한 V3일정도니 얼마나 강력한 팀이었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컬러TV가 도입되면서 거인의 미디어 노출빈도도 높아졌고 이에 전국적으로 절대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V9시기에 ON포의 왕정치는 MVP 5회, 나가시마는 MVP 3회를 기록하며 절정의 시기를 보낸다.
- 불안정기 - 1975년 나가시마감독이 취임하고 81년엔 후지타, 84년엔 왕정치, 89년 또다시 후지타감독이 취임하는동안 일곱번의 우승을 하며 그들의 파워를 과시하기도 하였지만 최하위를 맛보기도 하는 등 모든 순위를 경험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나가시마 감독시대 - 1992년 고시엔에서 고의사구를 5연속으로 당하면서 화제의 선수가 된 괴물타자 마츠이 히데키(松井 秀喜)를 4팀이 지명하며 영입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추첨끝에 요미우리가 교섭권을 얻으며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1993년엔 나가시마감독이 13년만에 복귀 하였고, 취임2년째인 94년에 드디어 리그 우승 및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97년에는 요미우리에 지명되지 못한자, 기요하라 카즈히로(清原 和博)를 FA로 영입하면서 전력에 큰 향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또한 시즌이 끝난뒤 드래프트에선 타카하시 요시노부(高橋 由伸)가 1순위로 지명되며 입단하게 된다. 이에 전력이 크게 향상된 요미우리는 2000년, ON포의 한축이었던 왕정치 감독이 이끄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 일본시리즈에서 격돌한다. 이 'ON포 대결'에서 결국 나가시마 감독이 승리하면서 '밀레니엄 우승'을 이루게 된다.
- 2000년대 - 2001년 드래프트에서 미래를 책임질 포수 아베 신노스케(阿部 慎之助)를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전체적인 밸런스가 갖춰지게 되었다. 이에 2002년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또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종료후 팀의 슈퍼스타인 마츠이 히데키가 메이져리그로 진출하며 팀의 전력이 상당히 손실되게 되었다. 이에 쥬니치와 한신에 밀려 우승을 맛보지 못하였다. 5년후인 2007년에 센트럴리그 정규우승을 이뤘으나 클라이막스시리즈에서 주니치에 내리 3연패,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다. 2008년에는 주력선수들의 부상으로 시즌을 꾸려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리그에선 한신에게 부동의 1위를 내주고 만다. 하지만 시즌 중반 1위를 지키고 있던 한신에게 3연승을 거두는등 리그 12연승을 달성하며 1위자리를 맹추격하였다. 결국 요미우리는 1위자리를 탈환하며 센트럴리그 우승을 맛보고 일본시리즈에도 진출하게된다. 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선 세이부에게 3승4패로 패하면서 아쉽게 물러나고 만다.
- 2009년 - 훌륭한 타자들과 투수들이 즐비해있고, 신뢰야구를 펼치는 덕장 하라감독이 지휘하고있는 만큼 올해도 강력한 우승후보임에 틀림이 없다. 현재 거인은 노장선수들과 젊은선수들이 밸런스 있게 포진된 상태이지만 곧 세대교체준비 역시 하지않으면 안될시기이기도 하다. 좋은 성적과 더불어 좋은 신인의 발굴에도 신경을 써야 할 시즌이다. |
구장명칭 : | 도쿄돔(東京ドーム) | |
기공 : | 1985年5月16日 | |
개장 : | 1988年3月18日 | |
그라운드 : | 인공잔디 | |
건설비용 : | 350억엔 | |
수용능력 : | 45,600명 | |
내부상세: | 좌우사이드 - 100미터 중앙 - 122미터 좌우중간 - 110미터 펜스 - 4미터 | |
교통편 : |
스이도바시역(水道橋駅) | |
- 동경돔 - 동경돔은 동경도 분쿄구의 고라쿠엔에 위치한 일본 최초의 돔구장이다. 현재 요미우리자이언츠의 홈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개장당시엔 니혼햄과 함께 사용하였으나 니혼햄이 삿포로의 삿포로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요미우리의 전용구장이 되었다. WBC나 아시아시리즈등 굵직굵직한 국제경기등이 치뤄지고 있으며, 프로경기 이외에도 사회인야구, 도시별대항야구대회등이 매년 열리고 있다. 또한 야구이외에도 격투기, 프로레슬링등의 경기도 열리고 있으며, 콘서트, 전시회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천정은 공기막구조라고도 불리우는데, 내부의 공기압을 외부보다 0.3% 높게하는 방법으로 팽창시키고 있다. 따라서 365일 24시간 압력차를 유지해야하므로 출입문은 회전식으로 되어있거나 에어록(공기차단)설비로 되어있다. 공기압이 높은 관계로 홈런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동경돔의 주위시설로는 우선 대형호텔인 동경돔호텔이 있으며, 동경돔시티라 불리우는 테마파크가 있어 야구시합에 관계없이 항상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한 번 가본적이 있지만 동경돔시티의 롤러코스터가 참 재미있었다. 도심내부를 바라보며 탈 수 있는 롤러코스터라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한 재미가 있었다. 또한 각종 야구용품을 판매하는 숍이나 레스토랑, 서점등도 있으므로 꼭 야구를 보러가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연간 약 3천만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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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돔의 야경 - 윗쪽이 관람차, 오른쪽이 동경돔호텔 |
위의 자료의 출처는 npbmania.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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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랭킹(규정 타석수 이상) | ※각부문의 리그 톱은, | 그리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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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등판, 승리, 세이브, HP의 굵은색 빨간 글씨는 요미우리 투수들을 뜻하며, 그 아래의 표의 굵은색 빨간 글씨는 리그 탑(Top)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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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는 다시 퍼시픽 리그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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