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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 NPB/NPB 소개

일본야구(NPB - Nippon Professional Baseball)의 역사

피넘 2010.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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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NPB)의 역사

 

일본의 프로야구는 일본야구기구(NPB, Nippon Professional Baseball의 약자)의 산하에 소속된 센트럴, 퍼시픽으로 이루어진 2개의 리그 및 12개의 팀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외에도 일본 국내에는 3개의 독립프로리그가 있으나 아직은 세미프로수준으로 보통 일본야구를 뜻할 때는 NPB산하의 프로야구리그를 뜻한다.

 

 

1. 일본에서 야구의 탄생

 

1872년 미국에서 건너온 미국인 교사에 의해 현재의 동경대학에 야구가 전래되었고 6년 뒤인 1878년 미국에서 귀국한 히라오카씨에 의해 일본 최초의 야구팀 '심바시 어슬레틱스 구락부'가 탄생되었다. 이때는 아직 야구를 야구라 칭하지 않고 영어식 그대로 '베이스볼'이라 불렀는데 1894년 이것을 '야구(野球)'로써 부르기 시작하였다. 2년 뒤인 1896년에는 다이이치 고등학교 야구팀이 요코하마 외국인 팀에게 승리하면서 야구가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1903년 한국으로 치면 연고전과 비슷한 와세다 대학-케이오대학간의 소케이센(早慶戦)이 정기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양교는 서로에게 지지 않기 위해 미국원정등을 치루면서 레벨을 높였고 일반인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이런 지나친 열기 탓에 1906년에 소케이센은 중지되었다.

 

2. 일본야구 첫 프로팀 창설 &고시엔의 탄생

 

1915년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현재의 고시엔 여름대회)가 열리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첫 야구대회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야구는 전국적인 인기의 기류를 형성하였고 결국 1920년 일본 최초의 프로팀인 일본운동협회(1929년 해산)가 탄생되었다. 1922년 가을 일본최초의 프로팀이 등장하였다. 이 팀은 와세다 대학팀과 경기를 하기도 했다. 1924년엔 전국선발중등학교 야구대회(현재의 고시엔 봄대회)가 열리게 되었고, 고시엔 야구장이 완성되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이듬해인 1925년엔 20여 년간 중지되었던 와세다-케이오대학간의 소케이센이 부활하였고 동경대학이 참가하면서 6대학리그전이 시작되었다. 1년 뒤 1926년엔 동경에 메이지진구구장이 완성되기도 한다.

 

3. 프로야구의 탄생

 

1927년부터 고시엔은 그 인기를 반영하듯 라디오로 실황중계를 시작하였고 또한 각도시 대항 야구대회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미국에서 일류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초청, 도쿄 6대학 리그 팀과 경기를 갖기도 하였으나, 이듬해 문부성에서 야구통제령을 내려 프로와의 시합을 금지하였다. 1934년에는 베이브 루스 등이 포함된 미국대학 선발팀이 일본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들을 상대한 일본대표팀을 중심으로 대일본동경구락부(大日本東京野球倶楽部, 현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상대할 구단이 없어 미국으로 건너가 기술을 연마하곤 했다. 야구의 주목도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결국 2년 뒤인 1936년에는 도쿄 거인, 오사카 타이거즈, 한큐, 도쿄 세네터스 등의 7팀에 의한 일본직업야구연맹이 창설되었고 최초의 프로리그가 도입되었으나 1944년 2차 대전으로 인해 중지되었다. 한편 이당시 최고의 인기스타는 5년 동안 65승을 올렸던 사와무라 에이지(현재 사와무라상의 장본인)투수가 있다.

                                       사와무라 에이지 

 

4. 부활 그리고 양대리그제도

 

종전 후 1945년 11월 직업야구연맹이 부활하고, 1948년에는 요코하마구장에서 프로야구 탄 생후 첫 나이트게임(저녁게임)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1949년 1팀을 추가해 총 8팀이 되었다. 그리고 1950년에는 드디어 센트럴리그, 퍼시픽리그(당시엔 태평양야구연맹)의 2리그 체제가 되며 센트럴리그는 8팀, 퍼시픽리그는 7팀으로 시작한다. 당시 센트럴리그는 신문회사들이 중심이 되었고 퍼시픽리그는 철도회사가 중심이 되어 재편되었다. 이에 한신타이거즈의 전신인 오사카 타이거즈도 현재의 센트럴이 아닌 퍼시픽리그에 참가를 확정하였으나 라이벌 요미우리와의 대결을 위해 퍼시픽을 포기하고 센트럴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 거기에 1951년에는 커미셔너를 결정하고 통일계약서를 만들어 미국 프로야구와 똑같은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각 팀은 별도의 2군을 두고 2군 팀끼리의 리그전을 벌이는데, 이 역시 마이너리그 제도를 본뜬 것이다. 또한 시즌의 후반기가 되면 우승 경쟁팀이 아닌 팀들의 모티베이션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퍼시픽리그가 1952년 플레이오프제도를 도입하기도 하였으나 1년 만에 관두기도 하였다.

한편 센트럴리그는 1953년부터 6팀 체제가 유지되었고 퍼시픽리그는 1958년부터 현재의 6팀 체제가 유지된다. 1952년에는 전 일본 대학야구권대회가 시작되면서 전국적이면서 폭넓은 나이대층의 야구선수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1953년에는 TV로 프로야구의 중계가 시작되면서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1965년에는 프로야구 첫 드래프트가 실시되었고, 이해부터 요미우리의 V9(9년 연속 일본챔피언)이 시작된다. 이 9시즌동안 2위는 주니치와 한신 딱 두 팀만이 할 정도로 당시 센트럴리그는 A클래스와 B클래스간의 확연한 실력차이가 있었다. 또한 1969년에는 요미우리의 카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가 일본 투수사상 첫 400승이라는 위대한 성적을 남기면서 동시에 그해 은퇴를 한다. 73년에는 퍼시픽리그가 2시즌 제를 도입하고 75년에는 또다시 퍼시픽리그가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에 요미우리는 팀 창단 첫 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

77년 요미우리의 ON포의 중심인 왕정치가 통산 756호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행크아론이 가지고 있던 프로야구 통산최고 홈런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3년 뒤 1980년에는 태평양야구연맹이 명칭을 현재의 퍼시픽리그로 개명하게 된다. 1984년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 체제 속에서 동구권의 불참으로 반쪽대회가 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야구가 첫 시범경기로 채택이 되었는데 당시 일본야구팀은 아시아예선에서 대만에게 패해 올림픽 출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러의 쿠바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그 티켓을 일본이 가지게 되었다. 사회인과 대학생이 중심이 된 대표 팀은 평균연령 22.5세라는 어린나이에도 불구, 첫 본선 시합에서 에이스 선동렬이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을 2대0으로 무찌르면서 승승장구 하게 된다. 결국 결승에서 홈팀 미국과 대결하게 된 일본은 히로사와의 3점 홈런 등으로 앞서며 우승,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미스터 자이언츠' 나가시마

                                   홈런왕 15회의 왕정치

 

5. 돔구장시대

 

일본은 강우량이 높은 나라로서 비가 자주 오는 편이라 날씨의 상황에 따라 시합이 열리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이에 1988년, 많은 야구인들의 박수와 갈채 속에 동경 고라쿠엔에서 최초의 돔구장인 도쿄돔이 개장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한편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야구가 정식종목이 되지만 동메달에 그치고 만다. 1993년에는 다이에 호크스의 홈인 후쿠오카에서 후쿠오카 돔이 완성되며 양 리그에 하나씩의 돔구장이 생기게 된다. 또한 이해에는 일본야구 최초로 FA(프리에이젼트)가 도입되게 된다. 다음해인 94년에는 혜성처럼 등장한 오릭스의 이치로가 210안타를 기록하며 종전 최고안타수를 갱신한다. 한편 퍼시픽리그를 석권하고 메이저리그의 LA다저스에 입단한 킨테츠의 영웅 노모히데오가 95년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받으며 미국야구의 인기저변이 크게 넓어지게 된다.


                                             도쿄돔
 

97년에는 나고야돔과 오사카돔 두개의 돔이 동시에 완공되며 리그별로 두개의 돔구장을 갖게 된다. 99년에는 세이부돔이, 2001년에는 잔디교체 방식으로 축구장과 야구장의 운용이 가능한 삿포로 돔이 개장하면서 일본프로야구는 총 6개의 돔구장을 가지게 된다. 또한 메이저리그에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이치로 선수가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일본프로야구출신 선수로서는 노모히데오에 이어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 신인상을 수상한다.

 

한편 퍼시픽리그는 2004년에는 1위 독주를 하는 팀이 생기게 되었을 경우 나머지 팀들의 후반 경기운용이 성의가 없다는 점을 지적받고 다시 클라이막스 시리즈라 불리는 플레이오프제도를 부활시키게 되었다(4회째). 센트럴리그도 2007년부터 플레이오프제도를 도입한다. 2005년에는 미국의 인터리그를 본따 만든 교류전이 시행되면서 양 리그의 교류시합이 일본시리즈가 아닌 리그전에서도 열리게 되었다. 비록 성적 등은 리그기록에 포함이 되지만 교류전 최고 승률 팀에게는 교류전 우승팀이라는 칭호를 수여하면서 팬들의 관심을 다각도로 이용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며 현재까지 이르게 되고 있다. 교류전 때문에 올스타전의 관심이 줄어들어 중계권 수입 등의 문제로 인해, 올스타전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일본야구가 가지고 있는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6. 마무리 



일본은 세계의 경제 대국이자, 스포츠에 있어서도 아시아의 영역을 뛰어넘는
종목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축구의 J리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연봉 등으로 많은 스타선수들,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야구 또한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받을 수 없는 연봉과 환경으로 많은 선수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선진 야구를 지향하는 일본이지만 문제점이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점을 뒤로하고서라도 즐길 수 있을만한 거리들이 많이 있기에 스포츠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지켜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 작성의 뼈대는 npbmania.com의 일본야구역사이며,
일본야구의 네이버 백과사전에 필자의 생각이 조금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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